오래간만에 새 글을 올립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닮아서 들을 수록 친근감이 간다는 관악기 클라리넷,
모짜르트는 이 악기를 알고 난 후엔 이 악기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오늘은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가 (A)장조 K.622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
전 악장을 전부 소개해보려합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는
특별히 이 곡 2악장을, 주제곡으로 사용해서 유명해진 곡이기도 해요
피츠버그 중심가를 찍었던 영상을 가져왔고
3악장 전부를 들려드리려고, 런던 시내 투어 장면을 더 넣어보게되였습니다.
제가 요사이 이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했어요.
이 영상의 배경음악을 연주한 악단은 Iceland Symphony Orchestra/
지휘자(conductor)는 Cornelius Meister, 클라리넷 연주자는 Arngunnur Árnadóttir 입니다.
영상 1)
↑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가(A) 장조 K. 622를 연주하는 Arngunnur Árnadóttir의 모습
↑독일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27일-1791년 12월 5일 )
모차르트의 국적은 오스트리아이며 1756년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태어남
1)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K.622/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의 구성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음색은
다소곳하면서도 차분하고 극적으로 치달을 때는 열정을 나타내보인다.
변화무쌍한 매력을 지닌 악기가 바로 클라리넷이다.
모짜르트는 피아노 이외의 다양한 악기에서도 그 특성을 잘 이해하여 명곡을 만들어내였지만,
이 클라리넷 협주곡을 쓰면서는 클라리넷의 이와 같은 특징을 극명히 드러나도록 작곡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곡의 구성은 3악장으로 다음과 같다.
빠르고 - 느리고 - 빠른 3악장의 전형적인 협주곡 형태이다.
제 1악장 : Allegro 4/4 박자
소나타 형식, 관현악에 의해서 주제를 제시하면 솔로가 받아서 연주하는 감미로운 멜로디
제 2악장 : Adagio 3/4박자 세 도막 형식
2악장은 유명한 영화 "아웃 어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의 OST로 사용되어 우리들에게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더 해 주었으며 서정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제 3악장 : Rondo(Allegro) 론도 알레그로 (화려하고 현란한 론도 형식)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 Major in KV 422에 대한 해설]
모짜르트는 모두 50곡이 넘는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절반은 <피아노 협주곡>이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짜르트
자신이 피아노의 명수였기 때문에 자기가 연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피아노 협주곡>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서 다른 악기를 위한 협주곡은 그 악기의 명인을 목표로 두고 작곡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당연히 수가 적었다.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은 4곡의 호른 협주곡을 비롯해서, 파곳,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그리고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등 10곡이 채 안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 주옥같은 명곡들로서 모차르트 이후의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들은
이들을 능가할만 한 곡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모짜르트가 클라리넷을 알게 된 것은 소년시절인데 당시에는 그다지 널리 쓰이지 않았던 클라리넷의 음색이
모짜르트의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악기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 마다 놓치지 않고
교향곡 등에 사용했다.
이 <클라리넷 협주곡>은 모짜르트가 세상을 뜨기 약 2개월 전에 오페라 <마적>을 전후해서 작곡한 것인데,
제 1악장만은 그 보다 2년전인 1739년에 스케치 해 두었던 <바셋호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알레그로>에
가필한 것이다.
모짜르트의 만년의 사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나면서 죽고, 아내는 병들고, 가계는 쪼들려서 빚만
늘어났다. 더운 여름에도 아내만 온천으로 보내고 비인에 남아서 쇠약해 가는 육체에 채찍질을 하면서
작곡에 전념했다. 그러한 모짜르트의 곤경을 보다 못해 원조의 손길을 뻗친 음악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라는 클라리넷의 명수였다. 슈타틀러는 손수 뛰어다니면서 돈을 구해 왔고,
또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서 작곡도 의뢰하면서 모짜르트의 가계를 도왔다
모짜르트는 이 고마운 벗을 위해서 클라리넷을 위한 2개의 곡을 썼는데 그것이 이 <클라리넷 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곡>이었다.
이 곡은 협주곡이라고는 하지만 독주자의 연주기술이 과장도 허세도 없는 세련된 표현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쓸쓸한 정감을 다양하고 변화많은 클라리넷의 음색으로 살려서 면면히 이어진다.
이 곡을 쓰던 당시의 모짜르트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특히 제 2악장의 담담한 흐름에는
인생에 대한 체념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 부분을 들으면서 모짜르트의 불우한 만년을 생각하며 쓸쓸해진다.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특성을 극한까지 살리고 있다. 특히 저음역과 고음역을
다루는 솜씨는 절묘함 그자체이고, 구성도 치밀해서 각 악장의 선율이 아름답다.
이 작품은 그가 죽기 두달전에 완성된 곡으로 특히 제2악장 Adagio는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매우 가슴 따뜻한 선율이 2악장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더구나 둔탁한 음을 내는 오보에와 트럼펫 그리고
드럼의 소리를 생략한 오케스트라의 감미로운 배경음을 통해 클라리넷의 음색을 잘 살려주고 있는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원래는 클라리넷류 악기의 일종인 바셋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된 것이
다. 바셋 클라리넷은 일반적인 A조 클라리넷의 음역에 한 옥타브 더 낮은 C음까지 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악기인데,
당시 이 작품을 헌정 받은 유명한 연주가 안톤 슈타틀러는 클라리넷 자체보다는 이 바셋 클라리넷을 주로 연주하였다.
당시 클라리넷은 신생악기로서 아직 주된 음역과 조가 확고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던 까닭에 여러가지 음역과
조의 악기가 혼용되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와서 관악기의 대폭적인 개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오늘날과 같이 B flat조와 A조의 클라리넷 (잘 아시다시피 클라리넷은 조옮김 악기이다)이
주된 악기로 정착이 되었고, 바셋 클라리넷은 곧 잊혀진 악기가 되어 결과적으로 바셋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작품으로는 모차르트의 두 곡, 즉 협주곡 A장조와 5중주곡 A장조 K.581이 거의 유일한 존재로 남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모차르트의 바셋 클라리넷 협주곡은 보통 클라리넷으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그에 따라 일반적인 클라리넷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저역의 음표들은 대체로 한 옥타브 정도 높은 음으로
옮겨져 연주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거기에다 모차르트의 자필악보마저 전해지지 않게 됨에 따라 이 A장조 협주곡의 본래 모습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K.622 ] 의 개요
이 아름다운 곡은 모짜르트가 유일하게 남긴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지막 협주곡이기도 하다.
그의 최후의 작품으로 그가 죽기 전 약 2개월 전 (1791년 10월 뷔엔나) 에 완성, 작곡되었다 한다.
모짜르트가 가 평소 친분이 깊었던 빈 궁정 악단의 클라리넷 연주가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를
위해서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안톤 슈타틀러는, 만년의 삶을 불우하게 보내고있던 모차르트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라 한다.
이 곡은 1791년 10월 경 빈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클라리넷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이미 클라리넷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악기의 특징을 잘 살려 작곡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있다.
모짜르트는 평생 모두 50여곡의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 중 피아노를 위한 것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있어 피아노의 명연주자였던 그의 피아노에 대한 편애를 잘 드러내 준다.
이에 비해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의 수는 적어서 4곡의 호른 협주곡을 비롯하여
풀륫, 오보에, 클라리넷 등을 휘한 협주곡 등은 채 10곡이 안 된다고 한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간의 절묘한 조화와, 독주 악기의 절제가 특징이다.
클라리넷의 기능이 최고도로 발휘되였고, 저음역과 고음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고상하고 품위있는 정감을 나타낸다.
이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 622는 모짜르트가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한
유일한 협주곡이자, 그의 협주곡 장르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되였다.
또한 협주곡으로는 이례적으로 카덴차가 없다.
카덴차(cadenza)란?
협주곡에서는 독주 악기를 연주하는 협연자가 주인공이니만큼,
독주자의 기량을 마음 껏 과시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곤한다. 이런 부분을 카덴차라고 한다.
곡이 끝날 무렵에 독주악기가 마지막으로 돋보이도록 자유롭고 현란한 기교를 발휘하도록하며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 시간 동안 반주는 쉬거나 화음이 지속된다.
이 협주곡은 슈타틀러에 의해 1791년 10월 16일에 프라하에서 처음 연주된 것으로 보이나,
역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첫 연주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미국, 1985年)/이 영화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해서 만든 영화였었기에
웅장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서정적인 감동을 선사한 기억이 납니다.
Out Of Africa의 OST로 쓰여진 음악은
원래는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의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작품 622 - 2악장 Adagio입니다.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 622 / 2악장 Adagio)
Dana Winner(다나 위너)가 부른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은
이 모짜르트 원곡(2악장)에다
가사를 넣어서 편곡하여 만든 곡입니다.
광활하고 멋진 아프리카 자연의 풍광과 더불어서
두 주인공의 비행 장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긴 해요^
아웃 어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아카데미 7관왕에 빛나는 영화로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했습니다.
덴마크 출신의 여류작가 카렌 블릭센 (Karen Blixen 1885-1963) 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한 작품입니다.
웅장하고 광활한 아프리카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카렌과 데니스의 비행장면이 나오며
이 영화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속 A장조 K622 제 2악장 (아다지오) 가 흘러나옵니다.
영화의 삽입곡으로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낙원의 정복 주제곡/Conquest of Paradise는
Dana Winner(다나 위너)가 취입해 큰 힛트를 쳤습니다
다음 영상은 Out of Africa에 나왔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 622 A장조 제 2악장)을 원곡으로 해서
Dana Winner가 부른 노래/Stay with me till the morning를 배경음악으로 한 영상입니다.
영화 Out of Africa를 편집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올려봅니다.
영상 2-A )
↑영화 Out of Africa의 OST로 쓰여진 Dana Winner의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영상 2-B )
↑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2악장 아다지오
2) 기타
가장 먼저, 현재까지 모차르트의 자필 서명이 담긴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 악보가 출판된 것은 1801년이다.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는 악장간의 완성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이유로 모차르트의 스케치를 기초로 하여 누군가가 첨가하여 완성한 곡이 아니냐는 의문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곡이 슈타들러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슈타들러가 갖고 있었던 개인악기가
당시 널리 쓰이던 클라리넷과는 또 다른 특수한 악기였기에 독주악기에 대한 의문도 있다.
원래 슈타들러가 갖고 있던 개인악기는 당시에 유행하던 악기인 바셋 호른의 모양에 마개를 첨가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 클라리넷보다 아래로 두 음 더, 즉 저음 다까지 연주할 수 있었던 클라리넷이다.
후대의 연구가들은 ‘바셋 클라리넷’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상 편의를 위한 것이지
슈타틀러 시대의 용어는 아니다. 슈타들러는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클라리넷'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이 곡이 바셋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된 것인지는 모차르트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1801년 첫 출판된 악보들의 독주악기가 A조의 가-클라리넷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보통 가-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것은 아마 19세기 당시에 가-클라리넷이 널리 쓰이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950년 이후 학자들과 클라리넷 연주자들 사이에서 원곡 복원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요즘엔 바셋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 곡의 1악장 도입 부분이 플룻 협주곡 1번 1악장의 도입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작품을 전 작품과 유사하게 작곡한 적이 없진 않지만 이렇게 대놓고 배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가 다른 곡들의 악상을 빌려와서 작곡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안톤 슈타틀러에 관하여:]
↑ 안톤 슈타틀러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 Biography
Anton Stadler (28 June 1753 – 15 June 1812) was an Austrian clarinet and basset horn player for whom Wolfgang Amadeus Mozart wrote both his Quintet for Clarinet and Strings and Clarinet Concerto.
He was reputed to have a beautiful tone, with exceptional mastery of the low register of the basset clarinet and basset horn playing. A contemporary Viennese critic, referring to Stadler, wrote, “I would not have thought that a clarinet could imitate the human voice so deceptively as you imitate it. Your instrument is so soft, so delicate in tone that no-one who has a heart can resist it." A noted virtuoso, he played second to his brother Johann in the Vienna Court Orchestra. It was possibly this specialism in second clarinet along with the basset horn that led to his collaboration with Theodor Lotz (1748-1792), a clarinet maker. His idea was to add an extension to his B-flat and A clarinets – in the same vein as the basset horn – an extra major third to a low C. It was for this extended clarinet (now known as the basset clarinet but initially called a bass clarinet in the days before the modern bass had been invented) that the Clarinet Concerto and possibly the Quintet for Clarinet and Strings were written.
1784년 3월 18세기의 위대한 클라리넷 연주자인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 1753-1812)가
비엔나의 국립궁정극장에서 자선연주회를 가졌습니다.
그 연주회에 참석했던 슁크(Friedrich Schink)라는 작가는
슈타틀러가 그의 악기에서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며
또한 클라리넷이란 악기가 인간의 목소리를 슈타틀러처럼 그렇게 거짓말처럼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경탄했습니다.
그 날 슈타틀러가 연주한 음악은 모짜르트의 화려하고 웅대한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 K.361 "Gran Partita" 였습니다.
모짜르트는 그 후 계속해서 슈타틀러를 위해 클라리넷 5중주와 클라리넷 협주곡을 포함한 여러 개의
화려하고 뛰어난 클라리넷 곡들을 작곡했는데, 모든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슈타틀러에게
크게 감사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 능력과 모짜르트와의 남다른 친교로 인해 그 후
클라리넷을 위한 레퍼토리가 무한히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슈타틀러는 오스트리아 지방의 음악 가정에서 성장했는데 나중에 클라리넷 연주자인 그의 형
요한 슈타틀러와 함께 비엔나에 정착해서 클라리넷 연주활동을 함께 합니다.
1787년에는 궁정 오케스트라에 고용되었는데 슈타틀러는그의 형에 이은 제2 클라리넷 주자의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그건 그가 클라리넷의 저음파트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슈타틀러 형제는 또한 뛰어난 바셋 혼(Basset Horn 저음 클라리넷) 연주자들이였는데
모짜르트는 그들을 위해 이 초승달 모양의 클라리넷을 위한 많은 곡들을 작곡했습니다.
슈타틀러와 모짜르트의 관계는 처음에는 순전히 음악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는데 나중에는 친한 친구사이로
발전합니다. 슈타틀러의 커다란 결점은 돈이었는데 모짜르트로부터 끊임없이 돈을 빌려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정은 손상받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목관 악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금관 악기를 더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관 악기 들은 너무 삑삑거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모짜르트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플륫,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등 거의 대부분의
목관악기를 위해 다양하고 아름다운 작곡을 하여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클라리넷 협주곡은 모짜르트가 죽기 두 달 전인 1791년에 작곡되었습니다.
모짜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자 마지막 협주곡으로, 모짜르트의 육필 악보는 전해지지 않는데
원래 바셋 클라리넷이나 바셋 혼을 위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Bb장조 클라리넷이 아닌 A장조 클라리넷으로 연주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에 완성된 때문인지, 곡에
스며 있는 맑고 고운 슬픔이 듣는 이의 가슴에 더욱 절실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모두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2악장 Adagio 가 특히 유명한데,
1986년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비롯 7 개 부문을 수상한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와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주연의 영화
"Out Of Africa"에서 주제곡 (Dana Winner가 부른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으로 삽입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톤 슈타틀러의 관계>
클라리넷 발전에 크게 기여한 18세기의 작곡가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를 들 수 있다.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을 매우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비엔나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주자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
를 위해 클라리넷을 위한 작품을 다수 썼다.
특히 <클라리넷, 비올라, 피아노를 위한 삼중주 K. 498> <클라리넷 협주곡 K.622>
<클라리넷 5중주 K.581>등은 클라리넷 연주 레파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클라리넷 파트는 많은 경우 안톤 슈타들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안톤 슈타들러는 비엔나 궁정 오케스트라의 제2 클라리네티스트로서,
악기의 낮은 음역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비르투오소 클라리넷 연주자였을 뿐 아니라 바세트 호른과 바세트 클라리넷 연주자이기도 했다.
사실상 바세트 클라리넷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 역시 안톤 슈타들러이다.
그러므로 바세트 클라리넷을 위한 음악을 쓴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모차르트 라 말 할 수 있다..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과 <클라리넷 오중주 K.581>에서
클라리넷 파트는 바세트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또한 오페라 <티토의 자비>(L clemenza di Tito, 1791) 1막 중 메조소프라노 세스토가 부르는
아리아 'Parto, ma tu ben mio'에서는 바세트 클라리넷 오블리가토가 등장한다.
↑ 이 사진은 친구님 작품입니다^
바세트 클라리넷
[ Basset clarinet ]
바세트 클라리넷은 모차르트 시대에 사용된 클라리넷의 한 종류로, 안톤 슈타틀러와 테오도르 로츠가
협업으로 제작한 악기이다. 소프라노 클라리넷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관의 길이가 더 길어 더 낮은 음까지
소리 낼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클라리넷 오중주>에서 클라리넷 파트를 연주했던
악기로 잘 알려져 있다.
↑A조 바세트 클라리넷 (에딘버러 대학교 소장)
-최초 제작시기와 최초 제작자-
관악기 > 목관악기 > 홑리드 악기
공기울림악기(Aerophone, 氣鳴樂器)
최초 제작 시기 : 18세기 후반
최초 제작자 :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 1753~1812), 테오도르 로츠(Theodore Lotz, 1748~1792)
1. 바세트 클라리넷
바세트 클라리넷(Basset clarinet)은 18세기 후반에 사용되었던 클라리넷의 한 종류이다.
소프라노 클라리넷과 유사하게 생겼으나, 관의 길이가 더 길어 더 낮은 음까지 소리 낼 수 있었다.
소프라노 클라리넷으로 낼 수 있는 최저음은 기보상으로 E3(미)음인데 반해,
바세트 클라리넷은 그보다 장3도 낮은 C3(도)음까지 연주할 수 있다.
바세트 클라리넷은 모차르트 시대의 위대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Anton Stadler,
1753~1812)와 비엔나의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악기 제작자였던 테오도르 로츠(Theodore Lotz, 1748~1792)
가 협업으로 제작한 악기이다.
↑ 바세트 클라리넷
'바세트'(bassett)는 바리톤이나 테너, 혹은 알토 음역을 지닌 악기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클라리넷 족 가운데
'바세트'라는 말이 붙은 악기로는 바세트 클라리넷과 바세트 호른(basset horn)이 있다.
바세트 클라리넷은 널리 전파되거나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과 <클라리넷 오중주 K.581> 연주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악기라 할 수 있다.
2. 바세트 클라리넷의 역사
1788년 2월 20일, 비엔나에서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틀러는 새로운 종류의 클라리넷을 소개했다. 악기
제작자 테오도르 로츠가 디자인한 것으로, 외형과 조성은 표준 클라리넷과 동일했으나, 좀 더 크고 음역이
더 낮게 확대된 악기였다. 발명 당시에는 '바스 클라리넷'(Bass-Klarinett)이라 지칭했으나, 19세기에 등장한
모던 베이스 클라리넷과 구별하기 위해 '바세트 클라리넷'이라 명명했다.
바세트 클라리넷은 바세트 호른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악기이다. 1770년경, 저음역 클라리넷인 바세트 호른
이 널리 알려졌고, 이는 클라리넷 연주자들과 작곡가들이 클라리넷의 낮은 음역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모짜르트의 생애와 작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가 단지 35년을 살면서 600여 편의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들은 각각 후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나?를 생각해보면 놀랍지않은가 ~!
그의 음악은 우리 귀에 익숙하고 아름다움의 아이콘이 되였으며 고전적이기조차 하다.
모짜르트는 1756년 잘츠부르크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을 작곡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하는 등 많은 일화가 있다.
작곡가로서 그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것은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1763∼1766)이었다.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알게 된 J.슈베르트,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J.S.바흐의 막내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파리에서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교향곡(제1번 Eb장조) 등을 작곡했는데, 이 교향곡은 8세 때의 작품이었다.
두번째로 빈을 다녀온 후, 1769~1773년에는 3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는데
그 동안 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훈장을 받고,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입회시험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마르티니로부터 음악이론·작곡을 배운 일과
이탈리아의 기악·성악에 직접 접한 일 등은 그후의 교향곡·오페라·교회음악 창작에 풍부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이때 10대 소년으로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고 밀라노에서 작곡한 오페라를 상연(1770)하였는데,
제2회(1771)와 제3회(1772∼1773)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곳에서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후 17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차차 그 직무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1777년 가을부터 17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른 궁정에 취직하기 위하여 만하임·파리를 여행하였다.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음악면에서는 만하임악파와 접촉하는 등 수확이 컸고
이때 《파리교향곡》(1778) 외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또한 만하임에서의 아로이지아 베버와의 사랑,
파리에서의 어머니의 죽음 등 인생의 경험도 많이 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1780년 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의 상연을 위하여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와의 불화가 표면화하여,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살기로 결심,
그의 인생의 후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는 처음 작곡·연주(피아노)·교육활동을 하였으며,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1782)와 《하프나교향곡》(1782), 피아노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1782년 8월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그가 빈에 머무는 동안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17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
17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돈 조반니》(1787)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구르크의 뒤를 이어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닥쳐오는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교향곡 《제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에도 모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1789년의 베를린 여행에서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알현하여 작곡의뢰를 받았다
이듬해 초에는 오페라 부파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가을에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대관식협주곡》 등을 포함한 연주회를 열었으나 빚은 늘어날 뿐이었고
1791년 8월 의뢰받은 오페라 《티투스제의 인자》의 상연을 위하여 프라하로 여행하였으나
이 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빈시의 성 마르크스묘지에 있다.
36세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였으나, 어려서부터 창작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빈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으며,
그를 앞섰던 이른바 전고전파(前古典派)의 여러 양식을 한몸에 흡수, 하이든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였다
[ 모짜르트의 생가 ]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주(州) 잘츠부르크 시내에 있는 모차르트의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에 있다
가는 방법: 모차르트 광장(Mozart platz)에서 도보로 5분
주소: Getreidegasse 9, 5020 Salzburg
1756년 1월 27일에 ‘음악의 신동(神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으로,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9번지에 있다. 모차르트는 12세기 무렵 지어진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773년까지 살았다. 1917년 국제모차르테움(Mozarteum)협회에서 인수한 후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며, 전시품들을 통해 당시 중산층의 전형적인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1층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서신 등이 있고,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당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과 4층에서는 모차르트의 가족들과 잘츠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각각 소개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모차르트 CD와 각종 기념품을 파는 기념품 판매점과 카페가 있다. 관람시간은 9~6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7~8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이다.
모차르트 가족이 이곳을 떠나 이사해 살았던 노란 집이 미라벨 정원 근처에 있으며 모차르트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차르트 생가 뒤에 있는 대학광장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꽃, 약초, 채소, 과일 등이 거래되는 그린시장이 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차르트생가 [Mozarts Geburtshaus] (두산백과)
평화로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필요한 부분만 읽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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